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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 ( 조두영교수와 정도언 교수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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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04-10-05
스승 조두영 서울대 명예교수, 제자 정도언 교수
問 "명분과 흑백 택일에 묶여 찬성·반대만 있어요"
答 "회색계층이 압도적… 그들이 민심 주도해"
제자 스승에게 길을 묻다
정리=정도언 교수
▲정도언=지난 20여년간의 정신분석학 발전은 놀라운 것이지요. 진료 현장에서 보면 마음의 갈등은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환자의 심리 갈등이 작게는 가정과 직장, 크게는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개인과 가정, 사회의 갈등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문 ‘과거청산’을 둘러싼 대립은 어떻게 보시나요
답 도덕성만 강조하다간 나도 남도 못살게돼
▲조두영=정신분석 입장에서 보면 인간 집단의 정치사회적 큰 소용돌이가 30년 주기로 와요. 모든 자식은 부모에 대한 고마움 못지않게 반항심과 분노를 지니고 성장하다 청년시절에 한 번쯤 대폭발을 합니다. 가정이 모여 이룬 사회에도 이런 현상이 있어 폭발적인 소용돌이가 한 세대 간격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동학농민운동, 3·1운동, 6·25,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지금으로, 30년 내외 간격으로 온 사회가 들끓습니다.
▲정=지금 사회 전반에서 갈등을 현명하게 치유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예를 들어 ‘과거청산’을 둘러싼 대립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조=도덕을 너무 강조하면 사회 전체에 활기가 없어지고, 결국 자기도 못살고 남도 못살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돈 욕심 말고도 권력욕, 성욕, 명예욕 같은 다른 종류의 욕심이 있고, 도덕성도 각기 다른 종류의 것이 있습니다. 도덕성이란 단어를 함부로 쓰면 위험합니다. 다른 종류의 도덕을 지켜온 사람에게는 불공정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도덕성만 강조해서는 사회는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공산주의도 인간의 욕망을 너무 눌러서 오래 가지 못했지요.
▲정=명분론과 흑백 택일에 강박되어 있다 보니 찬성과 반대만 있고, 중간지대가 없으니 타협과 협상의 여지가 없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특히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집단으로 몰려다닙니다. 집단주의는 정체성이 흔들린 채 몰려다니는 청소년 문화입니다.
▲조=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응원을 보니 군중의 힘이 모아지는 데에서 나오는 희열을 느끼더군요. 순수하고 자발적인 대규모 군중 모임이 가능하다는 감동도 있었지요. 그런데 근래 들어 이런 군중집회가 정파나 이념 쪽으로 치우치는 변색이 일어나 걱정이 됩니다. 공연히 1936년 독일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 때의 군중이 연상되지요.
▲ 정도언 교수
문 현대의 폭력성은 경쟁과 돈에서 기인합니다
답 권위파괴도 일종의 폭력… ‘스승’이 무너져
▲정=젊은 사람들의 시위는 놀이문화의 성격이 큽니다. 청소년기 특징 중에 기존의 가치나 권위에 대한 도전과 반항이 있는데, 지금 우리의 격동적인 사회현상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조=부모가 한때 자식을 지배하는 것은 돈과 힘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근래에 부쩍 가진 자가 죄인취급을 받는데, 정신과 의사가 되어 사회의 뒷면을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부자들의 사생활은 오히려 불행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과실을 따먹는 사람은 다소 여유가 있는 보통사람들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대통령이 학생들에게 돼지 저금통을 나누어 주면서 “나에게는 부자들의 사회적 공헌을 잘 몰랐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다. 이제 우리 부자를 본받자!”는 말씀을 하면 좋겠어요.
▲정=돈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적 가치관은 소위 양반문화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급속하게 옮겨오면서 정리가 안 된 상태로 보입니다. 선진 시민사회가 발전하면서 겪었던 건전한 개인주의의 함양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합리적 판단 위에 자신의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지, 집단이나 조직의 힘에 의존하고 그것이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조=세상에는 회색층(灰色層)에 속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들이 숨어있는 민심주도층입니다. 정치인들은 이런 당당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한 가지 잣대로만 인간을 평가하는 것을 집요하게 주장한다면 그 뒤에는 감정적 판단이나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숨어있을 겁니다.
▲조=연쇄살인범이 두려운 세상입니다. 현대인의 폭력성을 논의해볼까요?
▲정=인간의 폭력성은 평소에는 윤리도덕, 사회적 가치, 법률, 그리고 경찰 통제 때문에 발동이 되지 않습니다. 유전적 차이도 다소 있겠지요. 현대사회에서 폭력성 표출을 좌우하는 요소는 경쟁과 돈이 아닐까 합니다.
▲조=비좁은 공간도 폭력성 표출에 기여합니다. 농촌에서 살다가 도시 영세민이 되면 이웃의 소음과 자극에 무방비 노출이 돼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지요.
▲정=대중매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습니다. 폭력적인 것을 자꾸 보여주면 익숙해지고 저질러도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됩니다. 권위의 파괴도 일종의 폭력입니다. 권위 자체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문제도 있지만, 권위의 파괴를 통해 얻고자 하는 숨은 동기와 집단적 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가장 가슴 아픈 것이 ‘스승’의 추락입니다. 이미 대가족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면 핵가족은? 이혼이나 ‘기러기 아빠’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만년 청소년들도 늘고 있습니다. 부모가 노령화되면 더욱 심각해집니다.
문 현실선 냉정한게 서양인이라는 걸 잘 몰라요
답 치열하게 돈벌어본 사람들이 나랏일 해야지
▲조=한국사회의 대가족 대체기능을 여자들은 종교모임, 남자들은 직장에서 찾게 되었어요.
▲정=퇴직당하는 것이 마치 대가족에서 파문당하는 것 같은 상징성이 있어 한국 남성들에게는 아주 힘이 듭니다.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우리만큼 큰 심리적 부담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조=서양은 수천 년 전부터 수렵·유목사회였기 때문에 청년들의 사회였지만 동양은 농사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노인들 중심이었습니다. 정보사회가 되면서 이제는 노인들이 ‘존재이유’가 없어서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의 힘도 무척 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에너지가 쓰일 데가 마땅치 않습니다.
▲정=여자들은 집에서 아이를 통해 자기실현의 대리만족을 얻으려 하지요. 교육에서 아이와 어머니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특히 아들과 어머니의 지나친 정서적 밀착은 아들의 유약성의 뿌리가 됩니다.
▲조=서양인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매우 냉정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 공부하면서 선생이나 상류층 사람들이 보여주는 기독교정신, 민주주의, 너그러움을 배워가지고 왔는데, 겉만을 본 것입니다. 서양인과 생활전선에서 경쟁해 보아야 진짜 그 속을 알게 되지요. 그들은 맹수와 싸우던 수렵 민족의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선을 넘으면 잔인할 정도로 가차없습니다. 하늘에 기대던 농경민족과는 달라요. 서양인 틈에 끼어 치열하게 돈 벌어 본 사람들이 정부에 많이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정=우리의 문제점들도 잘 뒤집으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예컨대, 집단주의는 단결로, 명분주의는 투명성으로 승화시키면 좋겠습니다.
▲조=지금 동아시아에서 우리의 위상은 유럽으로 치면 베네룩스 3국 중 한 나라 정도가 아닐까 하며, 우리 국민들은 실체 없는 욕심은 내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비굴하지도 않아야겠지요.
조두영(趙斗英·67)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정도언(鄭道彦·52) 서울대의대 정신과교수는 레지던트 시절 스승으로 만났다. 조 명예교수는 서울의대 정신과교수(1974~2002년)로 재직하면서 한국정신분석학회 초대회장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프로이트와 한국문학’ ‘목석의 울음―손창섭 문학의 정신분석’ 등의 저서에서 보듯 우리 문학과 전통 문화 등 다양한 텍스트를 정신분석학적 분석틀로 읽어내며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탐구해왔다. 정도언 교수는 한국정신분석학회를 이끌어왔으며, 금년 봄 국내 최초로 국제정신분석학회 공인 정신분석가 자격을 땄다.
( 조선일보 기사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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