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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대한 시작, 탄생

1961~1971년

정신치료 불모지에 씨앗을 뿌리다.

1961년 11월 28일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차가운 흙바람만 불던 서울 중곡동에 국립정신병원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뜨다. 정신의학 진료와 연구, 교육을 관장할 국가 기관 설립을 위해 정신치료의 불모지에 정신건강의 첫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1953년 보건사회부 산하 노량진구호병원이 설립되고 이후 1956년 말 발표된 정부의 ‘의료시설복구계획' 아래 1957년에 중곡동 현 위치에 ‘국립정신병원'이 착공되었다.

1961년 8월 ‘국립정신병원' 직제가 공포되고 , 그해 11월, 노량진구호병원을 인수하여, 1962년 2월 1일 드디어 최신 의료기구와 현대적 설비를 갖춘 3,160평의 2층 콘크리트 건물에서 국립정신병원이 첫 문을 열었다.

1961년 11월 28일에는 당시 병원 건물 완공을 축하하는 낙성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초대 원장 차희선 박사가 보고하고 당시 정희섭 보건사회부 장관이 참석했다. 또한 ICA자금을 들여와 병원을 건축하였기에, USOM(United States Operations Mission) 관련 인사들도 대거 참여하였다.

  • 진입료가 포장되지 않은 허허벌판에 낙성식 현판식
    진입료가 포장되지 않은 허허벌판에 낙성식 현판식
  • 1962년 당시 국립정신병원 본관
    1962년 당시 국립정신병원 본관
  • 국립정신병원 1962년 첫 운동회
    국립정신병원 1962년 첫 운동회

2. 편견을 향한 도전, 포용

1972~1981년

정신재활 치료의 본격적 장을 열다.

1976년 <국립정신병원>은 낮병동을 개원, 정신재활 사회 치료의 본격적 장을 열었다.

국내 정신병원에서 최초로 개설된 낮병동은 신상철 전문의의 노력으로 개설되었다.

낮병동은 오전 9시 30분에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 각종 프로그램 치료와 약물요법을 시행하고 오후 4시30분에는 활동을 마치고 귀가하는 프로그램으로 행해졌다. 낮병동 개원을 통해 환자들이 퇴원 후의 사회생활을 문제없이 영위하도록 하는 정신재활 치료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 시기에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국내 최초로 1975년부터 김유광 정신과 전문의의 발의로 심리극 치료를 시작한 것이다. 1975년 7월 5일 목요일 오후 3시에 첫 시작한 사이코드라마는 일반 배우들과 정신질환자들이 함께 심리 연극을 진행하면서 사회 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79년에는 환자 증가로 외래진료소가 신축되어 80년부터 새 외래진료소에서 진료를 시작하여 국립정신건강센터 개원 전까지 활용되었다.

1981년에는 의료와 연구, 교육을 관장할 정신간호보조원양성소가 <국립정신병원>내에 건립되어, 첫 교육생을 배출하면서 국내정신건강분야 최고 의료진 양성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 국립정신병원 심리병원 현판식 후 기념촬영(가운데가 심리극장을 처음 시작한 김유광 전 의료부장)
    국립정신병원 심리병원 현판식 후 기념촬영 (가운데가 심리극장을 처음 시작한 김유광 전 의료부장)
  • 국립정신병원 낮병동 개원 후 작업치료활동으로 악세서리를 만드는 모습
    국립정신병원 낮병동 개원 후 작업치료활동으로 악세서리를 만드는 모습
  • TV 사이코드라마 촬영팀과 회의하는 장면(왼쪽에 탤렌트 임예진, 오현경)
    TV 사이코드라마 촬영팀과 회의하는 장면 (왼쪽에 탤렌트 임예진, 오현경)

3. 영역의 다각화, 개척

1982~1991년

영역의 세분화, 다각화로 정신보건의 전문성을 높이다.

사회적 정신질환 이슈의 부각으로 서울 이외 지역인 나주와 부곡에 각각 <국립나주정신병원>, <국립부곡정신병원>이 문을 열다. 아울러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는 <노인전문병동> <알콜전문병동>이 문을 열어 바야흐로 정신보건의 전문화, 전국화 시대로 나아가다.

1982년은 4월 총기난사로 56명의 민간인을 숨지게 한 의령경찰서 우순경 사건이 터져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재발 방지 대책의 하나로 지방에 국립정신병원을 추가로 설치하는 대책이 마련되었으며, 일차적으로 전남도립뇌병원을 1983년 1월부터 보건사회부가 맡아서 <국립나주정신병원>으로 승격시켜 두 번째 국립정신병원이 탄생했다.

1982년 12월 30일에는 <국립나주정신병원>의 개원과 함께 <국립정신병원>의 이름에도 지역이 병기되어 <국립정신병원>이 <국립서울정신병원>은 1987년 신축 시 쇠창살을 제거하는 혁신을 단행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국립부곡정신병원>이 준공, 이듬해 5월 450병상으로 개원하였다.

  • 1982년 국립정신병원이 국내 최초로 문을 연 노인정신과 정문병동 개설식
    1982년 국립정신병원이 국내 최초로 문을 연 노인정신과 정문병동 개설식
  • 1982년 2월 1일 국립정신병원 20주년 기념식
    1982년 2월 1일 국립정신병원 20주년 기념식
  • 국립서울정신병원으로 명칭 변경 현판식
    국립서울정신병원으로 명칭 변경 현판식

4. 열림의 전개, 개방

1992~2001년

폐쇄와 격리에서 개방과 자율로 나아가다.

정신질환자는 무조건 가두고 격리해야 한다는 오래된 편견을 털고, 국립정신병원들이 <개방병동>을 개설하다. 사회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내일을 위해, 환자 스스로 일어서고 꿈꾸게 하는 자율과 개방의 시대를 시작하다.

1996년에는 또한 <국립서울정신병원>이 소아자폐진료소를 개소하였다. <국립서울정신병원> 소아자폐증진료소는 지하 1층 지상4층의 신축건물로 지어졌으며, 입원실, 주간치료실, 외래치료실 특수학급, 언어치료실, 감각통합훈련실, 작업치료실, 임상심리실, 사회사업과 등이 설치되었다. 이처럼 <국립서울정신병원> 소아자폐증진료소가 문을 열면서, 소아자폐증/발달장애 아동들을 포함한 소아 청소년 환자의 사회적응을 위한 다각적 전문치료 시스템 시행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 1996년 국립서울병원 여자 개방병동 개설
    1996년 국립서울병원 여자 개방병동 개설
  • 국립서울병원 소아자폐증진료소 개원
    국립서울병원 소아자폐증진료소 개원
  • 90년대 당시 국립서울병원 신관 전경
    90년대 당시 국립서울병원 신관 전경

5. 새로운 변화, 혁신

2002~2012년

더 널리 혁신하고 진정한 국민의 이웃이 되다.

반세기 역사로 존립해 온 <국립서울병원>의 혁신이 시대와 지역의 이슈가 되어, 갈등조정위원회가 출범. 지역 및 주민과의 합의와 조화 속에 본격적인 국립정신건강센터 건립계획이 마련되다.

2002년 5월, 모든 국립정신병원의 이름에서 `정신`이 없어지고 각각 <국립서울병원> <국립나주병원> <국립부곡병원> <국립춘천병원> <국립공주병원>으로 바뀌었다. 2002년 국내 정신과 병원으로는 처음으로 <국립서울병원>에 정신응급진료실이 허가되어, 24시간 급성기 정신질환자의 응급치료 및 입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2004년 6월에는 직제개정으로 <국립서울병원> 내 정신보건연구과가 신설되어 국가의 정신보건연구와 관련된 사항을 관할하기 시작하였으며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연구소의 모태가 되었다.

국립정신병원들은 이 시기에 책임운영기관이 되면서 각종 공공사업을 펼쳐, 소방서, 법무부, 지역정신건강센터 등과 다양한 공공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편 <국립서울병원>에서는 1989년부터 건립 후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낙후한 병원의 건물을 혁신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처음 주민의 반대와 갈등을 겪던 추진 논의는 2009년 대통령령에 의거하여 주민대표, 사회갈등연구 및 시민단체, 학계 및 연구기관, 공무원 등으로 <국립서울병원> 관련 갈등 조정 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갈등추진위원회에서는 본회의 31회, 실무소회의 21회를 걸치며 조화와 합의를 이루면서 최종적으로 국립서울병원 부지에 국립정신건강센터와 의료행정타운 등으로 구성된 종합의료복합단지를 조성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본격적으로 정신건강센터 건물 설립 추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2012년 2월 1일 <국립서울병원> 대강당에서는 <국립서울병원 개원 50주년 기념 행사> 를 열었다. 개원 50주년 행사에서는 반세기에 걸친 우리나라 정신보건의료기관의 중추적 역할과 장구한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또 다른 반세기를 준비하기 위한 도약을 다짐하였다.

  • 2002년(국립서울병원)에 가설된 정신응급진료실
    2002년(국립서울병원)에 가설된 정신응급진료실
  • 종합의료복합단지(가칭) 신축에 관한 보건복지부, 광진구, 권택기 의원 양해각서 체결 협약식
    종합의료복합단지(가칭) 신축에 관한 보건복지부, 광진구, 권택기 의원 양해각서 체결 협약식
  • 국립정신건강센터 조감도
    국립정신건강센터 조감도

6. 함께 가는 내일, 도약

2013~2016년

국민행복을 책임지는, 정신건강 책임기관으로 새 역사를 쓰리라..

국민 정신건강의 중추로 도약하기 위해 준비하고, 2016년 3월 1일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재탄생하다!!

2013년 5월 30일, <국립서울병원>은 연구 및 부속시설 1단계 기공식을 거행했다. 1962년 개원 이래 국가 정신건강의 축을 담당해온 <국립서울병원>이 지역과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어 ‘국립정신건강센터'로 거듭나기 위한 첫 삽을 떴으며, 광진구 지역발전을 담당할 <종합의료복합단지> 건설을 위한 역사적 첫발도 내딛은 것이었다.

2013년 7월 발족한 <국립서울병원>의 공공정신보건사업단은 사법정신건강증진팀, 심리적 외상관리팀, 아동청소년정신건강증진팀의 3개 팀으로 구성되어, 대상계층에 대한 정신건강관리와 진료연계 사업을 수행했다. 국립 정신병원들의 공공사업단 활동 중 하나로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유가족들에게 긴급 심리지원을 제공하였으며 2015년 메르스 창궐 시에도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심지리원을 제공했다.

공공사업단의 출범은 전 국립 정신병원 들에서 국민 행복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국민과 함께 하는 다양한 공공사업을 활발히 펼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3월, 드디어 <국립서울병원>은 국립정신건강센터로 개원하고, 21세기 국민정신건강을 책임질 새로운 기관으로 재탄생하다. 이제, 국가 정신건강의 역사에 또 다시 위대한 대장정을 시작한 것이다.

  • 2013년 국립서울병원 연구 및 부속시설 기공식
    2013년 국립서울병원 연구 및 부속시설 기공식
  • 국립서울병원 공공정신보건사업단 발대식
    국립서울병원 공공정신보건사업단 발대식
  • 2016년 2월 국립서울병원 연구 및 부속시설 준공식
    2016년 2월 국립서울병원 연구 및 부속시설 준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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